"솔로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다가 합창이 되어 화음이 이루어 질때 몸에 전율이 흐르잖아?? 민화 단체전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전시가 있었어,, 단체작이니까 고작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건데,, 내 작품 하나를 걸어놓고 볼때와 여러 사람의 그림이 한곳에 모였을때의 느낌은 많이 달랐다. 이것 저것 다른 전시들도 많이 하니,, 처음엔 별 생각 없었고.. 보러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꼭 가서 봐야한다는 선생님의 말에 직접 참여하고 전시장에 가서 봤었다. 가서 보니 왜 꼭!! 가서 눈으로 봐야한다고 했는지 알것 같았다.단체전은 많이 하지만 기억에 남는 단체전은 두개가 있다. 15인의 단체전과 100인의 단체전. 같은 민화를 주제로한 단체전이지만 두 전시는 준비방법도 완성된 그림도 달랐다.민화 단체전, 15명..
회원전이 있는 날, 어쩌다보니 내 그림이 걸려 있는 전시회에서 알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하루만 해도 된다고 했었는데,,이틀하겠다고 지원해서 전시장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내가 보는 전시가 아닌 지키는 사람으로 앉아 있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민화 전시 알바, 하루만 해도 된다는데 이틀을 잡았다규모가 꽤 있는 회원전 참석이라 내 그림은 딱 한점 걸려있었고, 그 당시에 내가 그린 연화도를 벽에 걸었다. 특별히 연화도를 골랐다기 보단,, 그냥 그 시기에 완성된 그림이 연화도였던거지,, 연화도를 내고싶어서 낸건 아니다. 해마다 출품하는 공모전과 전시가 애법 있다보니,, 골라서 내기보단 때때맞춰 완성된 작품을 출품하는게 좀 편하다고 할까.. 무튼 그렇게 연화도를 걸고 전시 알바를 자청해서 앉아 있었..
아이패드 민화, 연습없이 실전으로 시작민화를 그리다보니 본을 제대로 만들어야 완성도가 높아짐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째려보고 째려보다가 아이패드 민화를 시작해보았다. 디지털이니까 쉬울꺼라고 생각 했었는데 완전 착각이였다. 레이어를 어떻게 쌓아야 하고 뭐가 어쩌고.. 생소한 나에겐 조금 많이 어려운 디지털민화였다. 그래도 호기롭게 도전해 보았다. 붓이 아닌 펜으로 딱딱한 액정위에 선을 긋고 있자니 밀림도 힘도 달라 처음엔 많이 삐뚤 빼뚤 했다 거기에 확대해서 보고 있으니,, 픽셀로 찍힌 내 선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무한 반복수정을 하고 그리다보니 4~5번째 그림부터는 그나마 쫌 볼만하네 싶었다. 30분짜리 쉬운 본, 다 뜨고나니 1시간 30분분명 제일 쉬운 연화도로 시작해서 본 그리는 영상은 ..
창작민화를 한참 하다보니 이제는 또 다른 도전이 생겼다. 슬,, 시리즈 작품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음.. 여러 그림을 한곳에 몰아놨을때 연결성 있는,, 아~ 이건 이 사람이 그렸구나!! 하고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시리즈 말이다. 음~ 역시 생각은 쉽다. 아니 생각만 쉽다.. 그래서..ㅋ 어떻게 할것인가?!! 그게 제일 문제였다. 무엇으로 시리즈작을 만들어야하지? 어떤 소재를 반복해서 넣어야 연결성있게 보일까? 이것 저것 생각 했지만,.. 정말.. 머리가 뽀개지는 것 같았다... 창작민화를 마주할 때의 2차 고통이라고 해야할까.. 창작을 하면서 그 후 작품까지 연결지어서 생각 해야 하니.. 정말.. 창작의 고통은 엄청나다.. 민화 시리즈, 나를 떠올릴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엄청난 시련을..
민화 낙관, 이름 찍기가 부끄러웠다민화를 한참 그리다보면 그림 한 귀퉁이에 낙관을 찍기 마련이다.. 근데 이 낙관을 찍을 때마다.. 어느순간부터 묘~~ 하게 부끄러운 느낌이 드는거다. 뭐랄까.. 여기요~~ 여기 내가 있어요~~ 나 OOO 이가 그렸어요~~~ 라고 말하는것 같아서.. 내 이름이 찍힌 그림을 보고있으면 대놓고 동네사람들~~ 이 그림 내가 그렸어요~!!! 라고 말하고 있는것 같아서 많이 부끄러웠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니 경력과 연차가 많이 쌓이신 분들은 다들 호를 갖고 계셨다. 나를 감추면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오호? 호를 갖고 낙관을 호로 찍으면 나를 감추면서 나를 표현 할 수 있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호를 모르는 사람은 그저 작관을 그림의 일부로 볼 것이고, 나를 아는..
민화 색감, 밝으면 날리고 어두우면 칙칙해어느정도 그림을 그리다보면 선생님이 알려준 색을 칠하기보다 본인이 원하는 색감을 만들기 시작한다. 기본적으로 어떤어떤 색을 섞으면 어떤색이 나온다 정도는 알고 있으니,, 내가 원하는 색감을 만들기 위해 이것저것 섞어 본다. 화사하게 흐드러지는 꽃그림을 그릴때,, 화사하게 만들겠다고 밝은 느낌의 핑크를 넣었더니 핫핑크 꽃밭이 되서는.. 날리는 느낌의 그림이 나왔다. 그래서 그거 다시 엎을꺼라고.. 어두운 색을 많이 섞어서 색을 눌렀더니... 그림이 왜이렇게 칙칙해 지는건지,,,아놔- 화사하게 밝으면서도 차분하게,, 그렇다고 칙칙하지는 않게 하는 그 중간 어디의 색 찾기는 참으로 어려웠다. 그림을 그리기전엔 정해진 색으로 정해진 물감을 섞어서 그 색으로만 그림을 그리..
나는 그림선물을 잘 하지 않았었다. 초반엔 아직 실력이 미천하여,, 부끄러움도 한몫했었고.. 하지만 이젠 주위에서 그림 하나 그려주면 안되냐고 부탁을 받기도 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그림을 선물하게 된다. 그래서 선물을 줄때 받을 대상자가 누구냐에 따라,, 민화가 가진 의미를 생각하며 그림을 골라 그려준다. 결혼하는 동생네 부부에게는 잘 살라는 의미로 화조도를 그려줬고,, 취업을 앞두고 힘들어하는 사촌동생에게는 잘 될꺼라는 의미로 어변성룡도를 그려주기도 했다. 이렇게 좋은 의미 가득담은 그림을 이런 의미가 있데,, 옛다- 오다 주웠다 라는 느낌으로 던져주면 받는 이들은 당연히 고마워한다. 거기에 재밌는건 그림을 그려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반응이 조금 다르다는 것 뿐,."이 귀한 걸..
'주부가 되고 나서는,, 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시작하는 느낌을 화실에서 받아,,' 민화 화실, 주부의 새해는 여기서 시작해회사를 다닐땐, 연말이면 송년회를 하고, 크리스마스 파티도 하고, 새해가 오면 신년행사도 하고 그러니까 한 해가 가고 다시 시작하는게 자연스러운 일상이였는데,, 주부가 되고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시간이 슝슝 흘러서 그런 일상들이 사라지고.. 그냥 아~ 한살 더 먹었네,, 이런 느낌으로 새해를 맞이하기도 했다.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다 보니,, 지금이 몇월인지,, 연말인지 새해인지..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민화를 그리러 화실을 다니고 나서는 연말이랑 새해 분위기를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10년 동안 지켜온 일주일에 하루화실은 일주일에 한번 간다. 그런데 그 하루는 거의 10년 동..
그림을 그려보지 않은 사람들은,, 전통민화에 하나 뚝딱 올린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막상 내손으로 해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민화에 소재 하나 올려서 예쁘게 만들어 놓으면 창작민화가 뚝딱 하고 완성되는줄 알았다. 그냥 아~ 저기에 저거 하나 포인트로 올렸네? 딱 그정도로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창작민화를 직접 시작하고 보니,, 생각이 완전히 바꼈다. 그 소재 하나, 그 포인트 하나를 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간이 들어가는지,, 해보기 전엔 전혀 몰랐었다. 창작민화는 '하나 올리는 작업'이 아니었다창작민화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전통민화에 소재하나 추가하면 되는거 아니냐며 쉽게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 하기도 했었고,, 그런데 직접 하게 되면 그 과정안엔 여러..
"창작민화, 쉬운게 아니구만요" 창작민화를 해보자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정말 신났었다. 뭔가 나도 이제 창작을 하는구나 싶었고, 내가 뭘 그리면 좋을까 하는 생각에 괜히 들뜨기도 했다. 전통민화를 2~3년 정도 그리고 있었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선생님이 "이제 선생님도 창작민화 한번 준비해 보는 게 어때요?"라고 하셨고, 그다음 작품부터는 창작으로 해보자고 제안하셨다.그때는 아~싸~!! 나도 창작한다~~ 라는 기분에 심취해 창작이라는거 쉬울 줄 알았다. 어려울꺼라곤 생각도 못했다. 재미만 있을 줄 알았지. 근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남들이 창작의 고통이 어떻다는 말을 하면 속으로 '음~그렇구나~' 하고 별 생각 없이 넘겼는데, 직접 해보니 내 머리가 터질 것 같아 그..

